분묘기지권
가끔 “분묘기지권”이라는 용어가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실제 장묘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로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또 실생활에 미치는 효력이 어떠한지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내용이 성문의 법률 규정에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관습법상 물권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토지(임야) 소유권 행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관한 정의개념, 성립요건, 효력 및 향후 권리내용의 변화 전망 등을 개관함으로써 법률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가. 정의
분묘기지권은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 소유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고 토지 소유자나 제3자의 방해를 배제할 수 있는 관습상의 물권이다( 대법원 1994. 12. 23. 선고 94다15530 판결, 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다63017,63024 판결 등 참조). 여기에서 분묘란 그 내부에 사람의 유골, 유해, 등 시신을 매장하여 사자(死者)를 안장한 장소를 말한다( 대법원 1991. 10. 25. 선고 91다18040 판결 등 참조).나. 성립 및 존속요건
(1)분묘기지권은토지 소유자의 승낙이나 묵인, 취득시효 등을 원인으로 발생한다.
(2)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은 봉분 등 외부에서 분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고, 분묘가 평장되어 있거나 암장되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외형을 갖추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으로 분묘기지권은 등기 없이 성립한다(대법원 1996. 6. 14. 선고 96다14036 판결 등 참조).
(3) 한편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의 존속기간을 민법의 지상권에 관한 규정에 따를 것이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 약정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그에 따를 것이고, 그러한
사정이 없는 경우 권리자가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며 그 분묘가 존속하고 있는 동안 존속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 1982. 1. 26. 선고 81다1220 판결, 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5다44114 판결 등 참조).
다. 종류
분묘기지권의 성립 방식에 따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승낙형
대법원은 오랜 기간 동안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분묘를 설치한 경우 분묘기지권을 취득한다고 판결하였다( 대법원 1958. 6. 12. 선고 4290민상771 판결, 대법원 2000. 9. 26. 선고 99다14006 판결 등 참조).
(2) 양도형
대법원은 자기 소유 토지에 분묘를 설치했던 사람이 토지를 양도한 경우,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는 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다고 판시하여 왔다( 대법원 1967. 10. 12. 선고 67다1920 판결 등 참조).
(3) 취득시효형
대법원은 나아가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라도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고, 이는 등기 없이도 제3자에게 대항 할 수 있는 것이 관습이라고 판시하여 왔다(대법원 1957. 10. 31. 선고 4290민상539 판결, 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다63017, 63024 판결 등 참조).
라. 분묘기지권의 연원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조상을 높이 숭배하였다. 그 영향으로 어떤 토지라도 조상의 분묘를 설치(매장의 방법)하면, 그곳을 조상의 시신이나 유골 뿐만 아니라 영혼이 자리 잡고 있는 경건한 곳으로 생각하고 이를 함부로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관념이 널리 공유되었다.
이러한 관행이 존속했고 임야에 대한 근대적 법제도가 미처 정착되지 않았을 당시 조선고등법원은 1927. 3. 8. 판결에서 우리나라에는 타인의 승낙을 받아 그 소유지 내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은 이를 소유하기 위해 지상권과 유사한 일종의 물권을 취득하고, 승낙을 받지 아니하고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라도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분묘기지를 점유한 때에는 시효로 인하여 지상권과 유사한 일종의 물권을 취득하며, 이는 권리에 대하여는 증명 또는 등기 없이도 제3자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 관습이라고 판시하여 분묘기지권을 처음으로 인정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근대적인 의미의 임야소유제도가 형성되면서 타인의 임야에 설치된 분묘의 존속 여부가 문제되었다.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에 관한 판례는 조선고등법원 1927. 3. 8. 판결에서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받은 경우 뿐만 아니라,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받지 않고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도 20년간 평온ㆍ공연하게 분묘기지를 점유한 때에는 시효로 인하여 타인의 토지에 대해 지상권과 유사한 일종의 물권을 취득하여, 이 권리에 대하여는 증명 또는 등기 없이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관습이라고 하였다. 우리 대법원도 같은 취지에서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고 판결하였고, 판례가 쌓여감에 따라 관습상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가 관습법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는 산림공유(山林公有)의 원칙에 따라 분묘가 설치되는 산림에 대해서는 민간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임야소유제도가 형성되고는 있었으나, 임야에 대한 권리의식은 낮았고, 경제적 가치도 크지 않았다.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대부분 타인의 임야에 매장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고 토지주도 타인의 분묘에 이의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런데 근대적인 의미의 임야소유제도가 정착되고 임야의 경제적 가치도 증대되면서 법률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조선고등법원은 분묘 소유를 위한 토지사용에 관한 전술한 관습을 분묘기지권으로 인정하였고, 해방 후 대법원에서도 당시 매장 중심 장묘문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위한 토지 사용권을 내용으로 하는 관습의 존재를 인정하여, 분묘를 소유하기 위한 토지 사용권으로서 분묘기지권을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법에 의한 물권으로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에 관하여 소유자나 제3자의 방해를 배제할 수 있는 물권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하고, 봉분 등 외부에서 분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등기 없이 분묘기지권을 취득하며, 분묘기지권의 존속기간도 당사자 사이의 약정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며 그 분묘가 존속하는 동안 계속된다고 해석하였다
대법원이 20년 이상의 장기간 계속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형성된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관습법의 하나로 인정하여 법적으로 보호한 것은, 민법 시행일인 1960. 1. 1부터 50년 이상이나 지났다.
2. 분묘기지권의 존부에 관한 쟁점 검토
이러한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의 관습법은 수차의 전원합의체 판례에서 인정(“긍정설”)되어 왔지만, 이를 부인하는 소수의견(“부인설”)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툼은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이견일 뿐, 양도형과 승락형 분묘기지권에 대하여는 공히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습법의 존부문제는 사실상 법원이 판결을 통해 결정되고 있으므로 실제로는 대법원 판례를 관습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원(法源)으로 인정하는 범위의 문제와 다를 바 없다.
분묘기지권의 관습법을 부인하는입장도 있으나, 현재까지는 관습법을 인정하고 있는 입장이 판례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렇지만, 종전 분묘기지권을 지상권 유사 권리로 보아 무상을 원칙으로 인정했다가 현재 판례에서는 무상을 승낙했던 분묘기지권에 대하여도 지료청구를 인정하는 등 사회상황의 변화를 반영한 부인설의 논지에 힘입어 관습법의 내용변경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향후 판례의 변화 추이를 짐작하기 위해서라도 긍정설과 부인설의 쟁점을 자세히 검토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로 보인다.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의 관습의 존부에 관한. 논쟁은 전원합의체 판례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관습법의 성립근거
관습법이란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된 사회생활규범이 사회의 법적 확신과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 승인 ㆍ 강행되기에 이른 것을 말하므로,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된 사회생활규범이 관습법으로 승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그러한 관행의 법적 구속력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않게 되었다면 그러한 관습법은 법적 규범으로서의 효력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 2003. 7. 24. 선고 2001다48781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5. 7. 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은 과거 우리 사회의 조상숭배사상, 유교 중심의 문화, 농경 중심의 사회를 토대로 한 매장 중심 장묘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과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임야에 조상의 시신을 매장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하여 토지 소유자가 명시적으로 이의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사회현상도 하나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관습법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사회일반의 관습과 공동체의 의식 변화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관습법의 내용과 효력은 그 적용시점의 사회현실과 법질서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습법이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로 인하여 이를 적용하여야 할 시점에서 헌법 규정을 비롯한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면, 법원은 관습법이 현재의 법질서에 합치하도록 하여야 한다. 따라서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와 그 성립요건도 현재의 관점에서 재산권 보장에 관한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도록 해석ㆍ적용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는 1970년대 이래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도시화ㆍ산업화와 더불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널리 퍼짐에 따라 분묘기지권을 관습으로 인정하게 된 배경인 유교적 윤리 관념에 기초한 농촌공동체사회가 상당 부분 붕괴되었다. 또 임야의 경제적 가치 및 그 소유권을 보호할 필요성은 늘어난 반면 임야에 설치된 분묘는 임야의 개발이나 거래에서 커다란 장애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나아가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가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기에 이르렀다. 또 매장법을 전부 개정하여 2001. 1. 13. 부터 장사법(법률 제6158호)을 시행하면서 화장과 납골을 권장하였고(제4조), 분묘의 설치기간을 제한하였다.
관습법이 성립하려면 관행이 존재하고 있어야 하고 법공동체에서 그 관행을 법규범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식ㆍ승인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분묘기지권을 물권과 같은 권리로 인정하는 관습이 존재하더라도, 관습상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에 관한 관습이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다. 오히려 묘지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과 새로운 임야소유제도 사이에 생기는 분쟁을 줄이고자 민법의 취득시효 규정을 변형하여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를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조선고등법원 판결은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에 관하여 현행 민법과 내용이 유사한 의용민법의 취득시효 규정을 참조하면서도, 소유권 취득시효에서 요구하는 ‘소유의 의사’에 대응하는 ‘재산권 보유 의사’라는 요건을 누락하였다. 당시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가 문제된 분묘는 임야에 관한 근대적인 소유권이 형성되기 전에 설치된 것이었다. 따라서 분묘를 소유하기 위하여 타인의 임야를 점유하는 경우 임야 소유자의 승낙을 받고 분묘의 기지를 점유한다는 의사를 상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분묘기지권자로서 점유한다는 의사’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현행 민법 시행 이후 임야소유제도와 부동산등기제도가 확립된 이후에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민법 제245조 제1항에 따라 부동산 소유권에 관한 취득시효가 인정되려면 점유자가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점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소유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 이 규정은 민법 제248조에 따라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에 준용되므로,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에 대한 취득시효가 인정되려면 그러한 재산권을 보유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받은 것으로 알고 분묘의 기지를 점유한다는 의사’가 없다면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를 인정할 수 없다. 특히 악의의 무단점유의 경우에 소유의 의사에 관한 추정이 깨어진다는 대법원판례에 따르면 타인의 토지에 무단으로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를 부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