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법원 판결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발주자(도급인)와 수급업자, 하수급업자 간 하도급 대금 직접 지급에 관한 합의(이하 ‘직불합의’)가 이뤄졌다면, 별도의 청구절차 없이도 하수급업자에게 직접 지급청구권이 발생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대법원 2025. 4. 3. 선고 2021다273592 판결). 판결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사안의 내용을 가지고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안의 내용]
전북 정읍시(발주자)가 도급한 교량 가설공사와 관련해 공사를 도급받은 甲회사(수급인, 원청회사)는 공사의 일부를 乙회사(하수급인)에 하도급 주고, 이후 정읍시, 甲회사, 乙회사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乙회사에 하도급 대금을 직접 지급한다는 ‘직불합의’를 약정하였습니다.
그러나 甲회사(수급회사)가 어려워지자 그 공사대금(도급대금) 채권에 대해 다른 일반채권자들이 압류 및 가압류를 집행했고, 정읍시는 누구에게 변제할지 몰라 도급 대금 전액을 법원에 공탁했습니다. 이후 하수급인 乙회사는 직불합의에 따라 직불금 범위내에서 자신이 우선권을 가진다며 공탁금 출급을 청구했고, 압류 채권자들은 이에 반발해 공탁금의 수령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해서 다툼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직불합의서가 체결됐을 때 하도급자의 직접 지급청구권이 언제 발생하며, 그 권리가 제3자의 압류보다 우선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즉 “하도급법”은 ‘합의 시점’에 직접 지급이 가능하다고 규정하지만, 건설산업기본법은 ‘지급 방법과 절차가 명확히 합의된 경우’에 지급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어 해석상 충돌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법리를 적용할 지가 쟁점이 된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
1심과 항소심은 모두 원고 하수급인 乙회사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직접지급 청구권은 ‘기성 검사 후 지급 청구’ 등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발생하지 직불합의만으로는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수급인이 직접 지급청구를 하기 이전에 피고(일반채권자)들이 압류를 완료한 만큼 乙회사(하수급인)가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항소심 역시 “직불합의에서 직접 청구권은 하수급인의 시공 내역 분리, 정산 청구 등 절차가 이행돼야 비로소 발생한다”고 판단하여 수급인(원청자)의 일반채권자의 압류가 하수급인 직불금 채권보다 우선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하도급자 乙회사는 직불합의가 체결된 시점에 이미 정읍시(발주자)에 대해 하도급 대금 직접 지급청구권을 취득했고, 이때 정읍시가 甲회사(수급인)에게 부담하던 공사대금 지급 채무가 동일성을 유지한 채 乙회사에게 이전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직불합의 이후 甲회사의 채권은 법적으로 하수급자에게 귀속된 채권으로 보아야 하며, 그 이후 이루어진 압류나 가압류는 이미 하수급인에게 이전되어 소멸한 채권에 대한 압류이므로 압류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 내용의 요지와 유의점
정리하면 대법원은 직불합의가 있으면 그 이후 하수급회사의 권리는 단순히 장래 시공내역 분리, 정산청구를 하는 것을 전제로 한 지급청구할 가능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수급회사의 발주자에 대한 채권이 바로 이전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은 입법 취지와 적용 요건이 다름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간주하고, 수급인의 일반채권자보다 하수급회사의 직불금청구권을 우선해 보호하는 판결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향후 원청회사가 부도나기 직전인 경우 일반채권자들은 수급회사의 유일한 자산인 발주자에 대한 공사대금 채권은 하도급대금 채권을 뺀 나머지만 회수할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하고 그 채권회수절차에 착수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하도급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 즉 직불금청구권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도 해당 공사대금 채권만 분리되어 일반채권자에 우선할 것인가는 사안별로 좀 더 살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