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통상임금 개념의 재정립 (2)

2. 통상임금의 개념 구조

가. 정의규정 신설 및 규율과정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초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면서도 가산임금을 계산하는 도구인 통상임금이 무엇인지는 법률이나 시행령에도 별다른 규정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78년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개념을 ‘기본적인 임금과 이에 준하여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의 1일 평균치’ 라고 처음으로 정의하였고, 1982년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시간급 금액·일급 금액·주급 금액·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라는 정의규정이 생겼습니다. 이후 대법원은 계속하여 어떤 급여 항목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문제되는 사건들을 통해 통상임금의 개념구조의 내용을 판단해 왔습니다.

나. 판례의 변경

그런데 11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판결, 이하 “2013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근로자가 받는 각종 수당(급여)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될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시행령에 규정된 ‘정기성’· ‘일률성’ 와에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추가하였습니다. 따라서 이후부터는 통상임금이 되려면 해당 급여가 소정의 근로가치에 대한 대가로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개념요소(성격)가 구비되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고정성’이란 급여가 사전에 확정될 정도로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구체적으로는 회사재직 여부, 일정 근로일수 경과와 같은 조건이 붙어있는 급여의 경우는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런데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의 전·현직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 관한 위 2024. 12. 19. 전원합의체 판결(2020다247190판결, 2023다302838판결, 이하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2013 전원합의 판결이 통상임금에 부가한 ‘고정성’의 개념요소를 제거하는 내용으로 판례를 변경하였습니다. 즉 고정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유무나 성취 가능성과 무관하게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다. 소급효 제한

다만 전원합의체 판결은 법적안정성과 신뢰보호를 위해 새로운 법리는 선고한 날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해야 한다고 밝혀 소급효가 미치는 범위를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선고 시점으로 제한하고, 위 판결로 변경한 법리가 재판의 전제가 되어 통상임금이 다투어져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으로 한정했습니다.

그러니 위와 같이 새로운 통상임금 해석법리에 관해 소급효를 제한한 판단은 그 이유나 필요성은 이해할 여지도 없지 않지만, 법원의 판결은 입법작용이 아니라 법의 적용과 해석기준일 뿐이고, 판례가 법원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비추어 이는 명백히 자기모순적 부당한 판단입니다.

라. 판례의 변경 과정

2013년 전원합의 판결이 통상임금의 성질로 임금의 고정성을 요구했던 것은 어떤 임금항목이라도 소정근로의 대가가 되려면,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당연히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임금이라야 가산임금의 산정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본으로 한 해석입니다. 즉, 임금이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될 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의 충족과 상관없이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예외 없이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야 소정근로의 대가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통상임금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정성’이라 함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하여 업적, 성과 기타의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되어 있는 성질’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고정적인 임금’은 ‘임금의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소정의 근로시간을 근무한 근로자가 그 다음날 퇴직한다 하더라도 그 하루의 근로에 대한 대가도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받게 되는 최소한의 임금’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2013년 전원합의 판결은 여기서 더 나아가 통상임금은 법이 근로기준으로 마련한 도구개념이므로 노사가 통상임금의 의미나 범위에 관하여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따라서 성질상 통상임금을 제외하는 합의는 강행규정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지만, 근로자 측의 통상임금 재 산정에 따른 법정수당 등의 차액분 청구가 기업의 존립을 뒤흔들 경우 이는 신의칙에 의해 배척될 수 있다는 논쟁적이고 정책적인 법리도 함께 선고하였습니다.

이후 재직조건부, 근무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이 부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 생성된 판례로 산업현장에는 새로운 법리에 고안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는 정기상여금에도 재직자 조건 등을 붙여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도록 급여규정과 노사합의를 만들고, 노동조합은 이에 상응한 새로운 보충급여를 추가로 얻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에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붙일 것인지에 관해 노사가 치열하게 대립했고, 협상력에 따라 기업별로 결과는 달라졌습니다. 이로써 성질상 통상임금을 제외하는 합의는 강행규정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다는 판례에 반하는 주장사태도 발생하였습니다.

한편, 노조의 협상력이 부족하여 급여에 재직자조건이 붙었다는 이유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개별적으로 추가 소송을 제기하여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를 공격하였습니다. 물론 패소판결들이 이었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그러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하급심판결들도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급심들이 채택한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소정근로의 대가로 볼 수 있는 정기상여금에 재직자조건을 붙이는 것은 무효’라는 추가적인 법리를 적용하여 다른 결론을 도출하거나,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고정성 법리를 정면에서 다투며 ‘재직 여부라고 하는 것은 해당 직장에서는 지극히 예외적인 조건이므로 이를 들어 고정성을 탈락시킬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대법원은 2024년 2018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추가적인 쟁점을 전원합의체 법정에 회부하였습니다. 당시 ‘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에 더하여, 논란에서 비껴 있던 ‘근무일수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여부의 문제까지 심리대상에 포함하였습니다.

2013년 전원합의 판결 이후 11년이 지난 2024. 12. 19. 마침내 조건부정기상여금에 대한 새로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들이 선고되었습니다. 대법원은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 이므로 고정성은 근로기준법령에서 요구하는 통상임금의 요소가 아니며,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는 대가성 여부를 중심으로 따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로써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요소로 본 2013.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폐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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